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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양의 Back to the Past] CRT 창시자 브라운박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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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플레이 기술의 발달은 우리 삶에 많은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친구에게 카톡이 아닌 삐삐를 쳤고, 노트북에 USB를 꼽는 대신 뚱뚱한 데스크탑에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삽입했으며, 32인치 CRT TV를 장악한 정우성에 열광했으니까요.

이러한 디스플레이 기술과 제품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탄생해서 발전해 왔을까요? 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L양이 나섰습니다. 앞으로 <L양의 Back to the Past> 시리즈를 통해 디스플레이의 히스토리를 되짚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첫 번째 아이템은 CRT(Cathode Ray Tube)인데요. 모니터와 TV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CRT는 비록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나 LCD와 PDP가 탄생하기 전까지 100년 넘게 디스플레이의 핵심 기술로 사랑 받았습니다. 과연 그 시작점은 어디였을지 L양과 함께 과거로 떠나보시죠.

<관련 포스팅>

TV 디스플레이 혁신사, CRT부터 OLED까지

Back to the 1897’s, 초기 CRT의 탄생 비화를 찾아서!

▲ 위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위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백투더퓨처>의 주인공 마티는 ‘드로리안 자동차’로 달리며 과거와 현재를 오갑니다. 하지만, 저 L양은 그럴 필요가 없어요. 제가 개발한 타임머신은 비밀 공유망에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치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거든요.

CRT 디스플레이를 처음 개발한 사람은 독일의 물리학자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Karl Ferdinand Braun) 박사라고 합니다. 아하~ 그러고 보니 CRT를 ‘브라운관’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그럼, 본격적으로 브라운 박사님이 CRT를 처음 개발한 1897년의 독일로 떠나보겠습니다. 저와 함께 타임머신에 탑승하세요. 고고씽~

1897년, 독일에 도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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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T 발명 시절 박사님은 슈트라스부르크대학교 물리연구소 소장이자 물리학교수로 재직하고 계셨는데요. 그래서 슈트라스부르크대학교로 왔습니다. 똑똑똑. 브라운 박사의 교수실로 찾아가 “저는 박사님을 뵈러 21세기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왔어요”라고 밝혔는데요.

잠깐 당황한 브라운 박사님. “음…그렇게 시간이 지난 후라면 가능할 수도 있죠.”라며 담담하게 저를 맞아주었습니다. 드디어 브라운 박사님과의 인터뷰를 시작합니다!

CRT의 아버지,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 박사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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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반갑습니다. CRT를 발명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원래 진동이나 열역학에 관심이 많았었는데요. ‘앞으로 분명히 무선통신이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라는 확신을 갖고 관련 분야 연구에 전념했습니다.

그러다 진공 상태에서 음극선으로부터 나오는 전자를 형광 스크린 위에 때렸을 때 빛의 무늬가 그려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이 추후 혁신적인 영상 기기로 발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본격적으로 CRT 개발에 전념하기 시작했죠.

Q. 이전에는 영상이라는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나요?

아닙니다. ‘정지된 프레임을 연결해 빠르게 넘기면 이미지가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아이디어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 원리를 이용해 미국 에디슨이라는 분이 활동사진 영사기인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를 발명했다는 소식이 이곳 바다 넘어서까지 들리더군요. 하지만 그 장치는 미리 준비된 특정 영상 외엔 제공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더욱 자유로운 영상을 그려내는 기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Q. CRT의 최초 발명가로서, 브라운관의 구조를 간단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CRT는 형광물질이 칠해진 유리면에 음극 전자가 충돌하며 빛을 내는 원리입니다. 수많은 전자를 형광면에 충돌시키면 1초에 25개~50개까지 빛에너지를 발광하게 되는데 그 빛을 우리가 화면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Q. CRT를 개발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좌: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 박사의 모습 / 우: 초기 형태의 CRT

정확한 지점에 빛을 나타나게 하기 위해선 진공관이 무척 길어야만 했습니다. 직진하는 전자의 방향을 100도 이상 억지로 틀어 화면 모서리 쪽으로 발사해야 하니… 이처럼 어려운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수 많은 실패를 거듭하다 진공관의 길이를 늘리고, 강한 전압을 주니 제대로 빛이 나타나더군요. 이로써 CRT가 세상에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Q. 진공관을 최대한 늘려야 했기 때문에 CRT 디스플레이의 두께가 태생적으로 깊을 수밖에 없었던 거군요.

그렇죠.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이게 최선이에요. 추후 후손들이 더 좋은 방법을 고안했겠죠?

Q. 맞습니다. 박사님이 발명한 CRT는 발전을 거듭해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디스플레이 핵심 기술로 활약했습니다. CRT를 브라운관(Braun tube)라고 부르기도 할 정도니까요. 이쯤에서 소감 한마디 부탁 드립니다.

허…. 이거 참 감동적이네요. 주위에선 밤낮으로 연구하는 저를 보고 ‘괴짜’라고 부르며 무시하기도 했거든요. 하지만 이렇게 미래에서 온 분의 말을 들으니 제 업적이 미래 디스플레이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것 같아 무척 뿌듯합니다. 앞으로도 제 생이 끝나는 날까지 연구에 매진하겠습니다.


이렇게 브라운박사님은 새로운 연구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 다짐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습니다. 1909년 박사님은 무선통신의 방송영역을 개선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게 이르니, 이때의 열정과 다짐을 실천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죠? 😀 다음에는 또 어느 시대의 디스플레이를 만나보러 갈까요? <L양의 Back to the Past> 시리즈를 기대해주세요!

 

*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포스팅으로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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