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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시대를 앞서 미래를 그린 백남준

서울올림픽이라는 큰 행사로 전국이 들떠 있던 1988년 9월 초 주말, TV에서는 다양한 행사 중계와 특집 방송으로 시청자들의 이목 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강 축전 개막제, 성화 봉송 중계, 88서울국제가요제, 6대륙 영화 걸작선 등. 수도에 들이닥친 세계 각국 선수들의 낯선 외모가 조간신문 한 면을 화보로 장식하기도 했었죠. 그 와중에 백남준의 ‘위성 3부작’ 중 마지막 작품 <세계와 손잡고(Wrap Around the World)>가 KBS를 통해 국내 가정의 안방에 송신되었습니다. 9월 11일 일요일 새벽 0시가 지난 시각이었습니다.

W3 by Nam June Paik

▲ 1974년 착상됐지만 작품으로 실현된 것은 그로부터 20년 뒤인 1994년의 일이었다는 백남준의 <W3>. 64개의 구식 CRT TV를 ‘X’자 모양으로 배열한 작품으로, 이 사진 속 TV 화면에는 마침 샬롯 무어만(Charlotte Moorman)의 퍼포먼스 영상이 비치고 있습니다. (사진 제공: 학고재 갤러리)

TV 디스플레이 : 우리 마음의 시그널

그것은 아주 이상한 방송이었습니다. 한국을 포함해 세계 10개국을 동시 연결한 90분짜리 위성 생방송이었지요. 백남준은 뉴욕 PBS 방송국 스튜디오에 자리 잡고 각국에서 수신한 방송 신호를 재송신했습니다. 한국, 일본, 중국, 구소련, 미국, 독일, 아일랜드, 이스라엘, 브라질, 오스트리아에서 같은 시각 촬영되고 있던 사건과 풍경들이 백남준의 유쾌한 손끝에서 겹쳐지고 왜곡되면서 위성을 통해 세계로 파급되었죠. 10개의 나라로, 마치 “지구를 감싸듯” 말입니다.

각국 록 가수들의 공연, 현대무용 퍼포먼스, 비디오 아티스트가 송신하는 컴퓨터 그래픽이 환상적으로 뒤엉키며 이어졌고, 한국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에 설치된 백남준의 거대한 작품 <다다익선(多多益善)>이 공개됐습니다. 무려 1,003개의 TV 모니터가 쌓아 올려져 만들어진 탑은 각 화면에서 재생되는 영상으로 번쩍거리며, 마치 무수한 사람들의 마음이 의사소통하고 있는 것 같은 장관을 만들어냈습니다.

Tolstoy by Nam June Paik

▲ 백남준 작, <톨스토이>(1995). 백남준은 동양과 서양의 정신을 함께 보듬은 러시아 사상가 톨스토이를 존경했다고 합니다. (사진 제공: 학고재 갤러리)

한국을 대표하는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의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낙관적이었습니다. 그는 기술에 사람과 사람의 소통을 점점 더 이상적으로 구현시켜 줄 잠재력이 있다고 믿었고, 밤하늘에서 견우와 직녀가 만나듯이 세상의 모든 이질적인 것들이 결국엔 융화될 것이라 믿었지요. 1974년 착상해 20년이 지난 1994년에야 제작 기회를 마련했다는 작품 <W3>의 타이틀은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의 줄임말로, TV 화면들이 20분 가량의 영상을 1초 간격으로 인접한 화면에 전달하며 만들어내는 장관은 사람들의 귓속말이나 입소문을 연상케도 합니다.

백남준은 어떤 미래에 우리가 소통하는 방식은 ‘텔레파시’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거칠 단계는 ‘텔레커뮤니케이션(telecommunications)’이었죠. ‘텔레커뮤니케이션’이라는 말 대신 백남준이 썼던 표현은 “전자 초고속도로(electronic superhighway)”였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방식으로 움직이고 상호작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는 주로 TV 디스플레이로 표현했지요. 디스플레이에 구현되는 이미지, 그 이미지 뒤의 전기 신호, 전기 신호를 조작해 이미지를 움직일 수 있는 다채로운 가능성들이 백남준에게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작품 소재였습니다.

Good Morning Mr Orwell by Nam June Paik

▲ 백남준 작,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의 장면들. (사진 제공: 백남준아트센터)

TV는 TV다

백남준의 ‘위성 3부작’ 중 하이라이트는,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디스토피안 소설 제목이기도 했던 1984년 1월 1일 세계 4개국에 생중계됐던 <굿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rwell)>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록스타 피터 가브리엘과 로리 앤더슨이 듀엣을 부르고, 존 케이지(John Cage)가 말린 선인장으로 연주하는 음악을 배경으로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의 무용이 펼쳐지며, 베를린에서는 백남준과 친분 깊었던 행위예술가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가 퍼포먼스를 펼치고, 다시 뉴욕에서는 시인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가 포크밴드의 반주에 맞춰 명상에 관한 노래를 불렀지요. 백남준의 오랜 동료 샬롯 무어만도 출연해 TV 화면이 달린 첼로를 연주했습니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 역시 백남준의 유토피아적 신념이 반영된 예술적 선언이었습니다. ‘보세요, 오웰 씨. 최악의 경우 기술은 우리 삶을 옥죌 수 있지만, 우리는 예술을 통해 세계의 친구들과 동시적으로 소통하며 당신이 말한 1984년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예상했던 것과 다른 TV를 실현시키고 있습니다. 우리의 TV는 당신의 TV와는 다릅니다.’ 백남준은 아마도 그런 말을 하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A TV is a TV

▲ 백남준아트센터에서 1월 29일 개막하는 특별전 <TV는 TV다> 포스터.  (이미지 제공: 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 자신이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라 불렀던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www.njpartcenter.kr, 031-201-8571)에서는 지난 해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새롭게 큐레이팅한 전시 <굿모닝 미스터 오웰 2014>를 선보인 데 이어, 백남준 9주기인 오는 1월 29일에는 백남준의 TV 사용법을 그의 예술 이력과 함께 짚어보는 <TV는 TV다>를 비롯해 <2015 랜덤 액세스> 등의 전시를 개막할 예정입니다.

서울 학고재 갤러리(hakgojae.com, 02-720-1524)에서도 백남준 특별전 <W3>가 열리고 있습니다. 대작 <W3>와 90년대 제작된 소품들을 비롯해 백남준의 초기작 5점이 전시돼 있어, 젊은 백남준의 상상력을 원석 채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올해를 기점으로, 백남준이라는 이름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다시 뜨겁게 달궈질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렇게 다양한 전시를 통해, 우리는 그가 미리 보여준 오늘로부터 미래에 대한 힌트를 얻어낼 수 있을지 모릅니다. 백남준의 TV가 우리에게 송신하는 텔레파시를 통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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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에는 사람과 사람의 소통을 보다 이상적으로 구현시켜 줄 잠재력이 있다는 백남준의 생각에 LG디스플레이도 공감합니다. 혁신적인 기술과 차별화된 제품으로 사람과 사람을 잇고 사람들의 꿈을 실현시키며 세상을 더 밝고 풍요롭게 펼쳐갈 수 있도록, LG디스플레이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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