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심에서 초경량 자동차까지. 탄소소재는 폭넓은 분야에 활용됩니다. 그 중에서 저는 탄소소재를 활용해 에너지 문제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을 주로 연구하고 있죠. 태양광, 지열, 풍력, 조류 등을 활용한 에너지 발전에 탄소가 핵심재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탄소소재를 제대로 알아야 미래를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캠퍼스 33동 연구실에서 만난 박종래 교수는 국내 탄소연구 분야의 최고 권위자입니다. 박종래 교수는 1997년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로 부임한 이래 지금까지 탄소소재 한 분야를 꾸준히 연구하고 후진양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또, 세계적 학술지인 <CARBON> 편집위원, 한국탄소학회 및 아시아탄소학회 협의회 회장, 세계탄소카운슬 공동 의장 등을 역임하고 있습니다.
“탄소는 미래 첨단소재의 주역입니다. 초경량, 초고온, 초전도, 초내구성 등 고부가가치인 첨단 소재의 핵심이 바로 탄소소재입니다. 연필심ㆍ검은색 잉크ㆍ다이아몬드에서부터 전투기ㆍ자동차ㆍ첨단 의료장비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생활 곳곳에 탄소가 사용됩니다. 가장 시대를 앞서가고, 굉장히 매력적인 원소이자 소재가 바로 탄소입니다”
최근 박종래 교수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연구하는 분야는 ‘에너지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방안으로서의 탄소소재 입니다.
“태양을 이용하는 태양광과 태양열. 땅 속의 온도 차이를 활용하는 지열, 바람을 활용하는 풍력, 바다의 파도를 활용하는 조력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에너지를 추출하는데 탄소소재가 사용됩니다. 최근 산업계에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초경량 자동차, 수소차, 리튬배터리 등에서도 모두 탄소소재가 사용됩니다. 탄소야 말로 자원고갈, 환경파괴로 인한 기후변화를 대응할 수 있는 핵심소재입니다.”
박종래 교수는 LG디스플레이의 산학협력센터장도 겸하고 있습니다. LG디스플레이가 대학 연구기관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산학협력 프로그램을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직책이죠.
“5년 가까이 LG디스플레이와 산학협력을 진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보통 기업은 시장지향적 또는 목표지향적이어서 단기적 성과에 급급하기 마련인데, LG디스플레이는 대학 연구진과 수평적 관계에서 대화하고 장기적 안목으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은 다른 기업들도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LG디스플레이의 산학협력 역사는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LG디스플레이는 2012년 서울대학교 신소재공동연구소에서 ‘서울대학교-LG디스플레이 산학협력 협약서’를 체결하고 ‘LGD-서울대 산학협력센터(LGD-SNU Cooperation Center)’를 설립했습니다. 현재 산학협력센터에는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교수님은 물론 포항공대, 카이스트, 고려대, 연세대, 경북대, 인하대 등 다양한 학교의 교수님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보통 대학 교수들이 앞선 안목과 다양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잖아요. 이런 것이 실제 산업현장에 적용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갖고 있는데, 기업의 입장에서는 당장의 수익을 고려하면, 선뜻 투자하고 지원하기 주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LG디스플레이는 대학 연구진들과의 충분한 대화와 토론, 협의 등의 과정을 거쳐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많은 지원을 해주었어요. 그게 LG디스플레이가 세계시장을 누비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종래 교수는 인터뷰 동안 산학협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연구기관 간의 수평적 관계가 중요함을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어도 적절한 지원과 현업 반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머릿속 구상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디스플레이는 투과형과 반사형이 있습니다. 투과형은 현재 사용되는 형식이고 반사형은 자연계의 빛을 반사하는 것으로 LG디스플레이와 저희가 2년 이상 연구하고 있습니다. 사물이 햇빛을 반사해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처럼 디스플레이 기술이 구현되면 좋을 것 같아 제안했는데, 이를 흔쾌하게 받아들여 현재 연구 중입니다. 이름도 주요 기술의 앞 글자를 따니 HOPE가 돼 호프(HOPE)로 지었습니다. 상용화 된다면, 많은 분들께 희망을 드리리라 생각합니다”
박종래 교수는 디스플레이의 미래를 매우 밝게 전망했습니다. 앞으로는 더욱 유연하고 투명한 디스플레이가 우리 삶의 깊숙이 들어올 것이라고도 내다봤습니다.
“저희가 지금 마주보고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데, 저희 앞에 투명한 디스플레이가 하나 있다고 생각해 보죠. 선생님께서는 제가 보여드리는 여러 자료를 디스플레이 화면으로 보실 수 있고, 저는 선생님께서 준비하신 인터뷰 질의서를 반대쪽 디스플레이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디스플레이는 투명해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죠. 디스플레이가 앞으로는 유연한 직물처럼 우리 몸에 착 달라붙는 일체형이 될 것입니다. 현재의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사실 휴대형에 가깝죠. 하지만 옷을 몸에 입는 것처럼, 손목시계를 팔목에 차는 것처럼 디스플레이가 우리 몸과 일체형을 이룰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소재가 중요하고, 역시 탄소소재가 핵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종래 교수는 이러한 미래 기술이 우리가 생각하는 시기보다 훨씬 앞당겨 질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예전에는 기술의 발전속도를 대략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광범위한 분야가 서로 연결돼 있고, 다른 분야의 기술진보가 소재분야의 기술진보를 가속화 하기도 합니다. 글로벌 기업들도 디스플레이나 소재분야에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어, 머지않은 미래(10년 내)에 앞서 말씀 드린 기술이 사용화 될 것으로 조심스럽게 내다봅니다”
박종래 교수는 최근까지 서울대학교 기술지주회사를 이끌었습니다. 서울대학교의 다양한 연구팀이 개발한 기술의 특허, 상용화 등을 총괄하고, 또 많은 대학생들의 창업을 지원하는 것이 그의 주된 임무였습니다. 그래서 청년실업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청년창업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대학시절 창업을 생각해 보신적이 있으신가요? 아마 선뜻 그러한 생각을 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건 자신의 창업 아이디어를 시험해보고 도전해 볼 ‘플레이그라운드(운동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박종래 교수는 학생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는 인프라의 구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습니다.
“단순히 창업지원금을 주는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창의적인 학생들이 자신의 아이디어와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주지 않고, ‘창업을 해라’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은 대학차원에서 기업은 기업차원에서 또 정부는 정부차원에서 꿈 많은 대학생을 위한 인프라를 만들어 주고 기술지원도 해주고 전문가들이 조언도 해주고 또 금전적인 지원도 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첨단 미래의 주역인 탄소소재의 최고 전문가가 미래 산업을 이끌 학생들의 창업문제에 많은 열정과 관심이 있다는 점이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느낀 가장 큰 감동이었습니다.
앞으로 박종래 교수님께서 더욱 활발한 연구활동을 하시며, 국가 산업의 발전을 위해 크게 기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