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는 기업의 비결, 오늘은 국내에도 지사를 두고 있는 세계적인 화학 기업 ‘듀폰(DuPont)’의 사례를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글 이길성 차장 | 조선일보
시대가 거듭될수록 인류의 수명은 길어진다. 옛사람이 본다면 요즘은 만인이 장수의 축복을 누리는 세상이다. 그와는 정반대로 문명이 발전할수록 수명이 짧아지는 존재도 있다. 글로벌 기업들 이야기다.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에 따르면, 1935년 기업의 평균 수명은 90년이었다. 창업주 당대에 기업이 망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는 의미다. 그러던 것이 1975년에는 평균 30년으로, 1995년에는 22년으로 짧아졌다. 추후에는 평균 15년을 넘기 어려울 만큼 단명(短命)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게 맥킨지의 분석이다. ‘기본지키기’라는 원칙을 통해 영속기업을 가능하게 한 듀폰에 대해 알아보자.
업종은 바꾼다. 그러나 기본은 흔들리지 않는다
기업들이 점점 하루살이로 전락해가는 세상. 미국 듀폰은 살아있는 화석과도 같은 존재다. 올해 나이 214세. 1802년 미국 델라웨어의 작은 화약공장으로 시작해 3세기에 걸쳐 생존하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1955년부터 선정해온 ‘포춘 500’에서 듀폰은 단 한 번도 탈락하지 않았다. 포춘 500중 단연 최장수 기업이자, 역사가 200년이 넘은 유일한 기업이다. 듀폰은 또한 ‘가장 존경받는 50대 기업’ 순위에도 매년 이름을 올리는 몇 안 되는 기업이다.
세상 모든 창업주가 꿈꾸는 기업 듀폰. 그 장수 비결은 ‘변해온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을 두루 살펴야만 비로소 알 수 있다. 먼저 변해온 것에 대해 짚어보자.
듀폰은 시대와 시장의 상황에 따라, 철저하게 자신을 변신시켜왔다. 바꾸는 정도가 아니라 때로는 수족(手足)을 잘라내는 수준의 모험을 해왔다. 최초의 듀폰은 화약회사였다. 세계 1차 대전 한때 연합국이 사용한 탄약의 40%를 공급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불과 십여 년 만에 듀폰은 당대 최고의 섬유·소재 회사로 변신했다. 1930년대 대공황기를 돌파하기 위해 화학 분야에 연구개발을 집중한 결과, 나일론을 비롯한 혁신적인 제품을 줄줄이 쏟아낸 덕분이었다. 나일론뿐만 아니라 20세기 ‘꿈의 물질’ 목록 대부분이 듀폰 소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눌어붙지 않는 프라이팬을 가능케 한 테플론, 방탄조끼의 재료인 케블라, 혁신적인 합성수지인 폴리에스테르와 폴리아미드 등이 모두 듀폰에 의해 만들어졌다. 1969년 인류 최초로 달에 내린 우주인은 25겹의 특수소재 우주복을 입었다. 그중 23겹이 듀폰 제품이었다.
안전과 환경, 윤리경영, 인간존중의 기본
그러나 지금 듀폰을 섬유회사로 부르는 사람은 없다. 듀폰은 2004년 섬유사업을 매각했다. 수익률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전체 매출의 25%를 섬유가 차지할 때였다. 듀폰은 대신 세계적인 종자회사 파이오니아를 인수했다. 그런 선택을 두고 ‘200년 역사에서 가장 큰 도박’이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그러나 섬유사업 매각을 진두지휘한 할러데이 당시 회장은 “변화를 모색하면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그래도 살 확률이 60~70%다. 그러나 변화하지 않으면 반드시 죽는다”라며 한치 흔들림이 없었다. 그때의 도박은 대성공을 거뒀고, 듀폰은 이제 바이오·농식품·천단소재 분야에서 유일의 포춘 500 기업이 됐다.
모든 변신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의 저자 짐 콜린스도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지만 일관된 원칙이 없는 회사는 전혀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회사와 마찬가지로 실패한다.”라고 말했다. 듀폰의 변화들을 성공으로 수렴시킨 일관된 원칙은 무엇일까. 화약회사 듀폰과 섬유회사 듀폰, 바이오·농생명 회사 듀폰으로 변신해왔지만 듀폰이 듀폰다움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안전과 환경, 윤리경영, 인간존중의 네 가지 창업 이념의 힘이다. CEO와 직원이 바뀌고 사업 포트폴리오가 달라지고 고객이 바뀌었지만 이 네 가지 가치는 불멸의 DNA처럼 듀폰의 역사에 각인돼왔다. 듀폰이 214년을 버틴 힘은 이처럼 간단하고 기본적인 원칙에서 나온다.
무서울 만큼 기본에 충실하다
먼저 안전. 듀폰의 창업주인 E.I. 듀폰은 1802년 첫 번째 화약공장을 지을 때 그 폭발 반경 안에 자신의 자택을 지었다. 안전을 강조하는 백 마디 말 대신 현장의 직원과 똑같이 위험성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안전을 지상의 가치로 삼는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더없이 강렬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1818년 거대한 폭발로 직원 36명이 죽고, 듀폰 회장의 부인과 아기를 비롯해 임직원 가족들이 부상을 입는 참사를 당한다. 회사가 망할 위기에서 듀폰은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다. 그는 안전 교육을 강화하고 자신이 살 집을 다시 공장 안에 지었다. 피해 직원들을 위한 연금을 만들었다. 그런 듀폰을 보면서 직원과 주민들은 회사를 더 신뢰하게 됐다. 이후로도 위기가 있었지만, 듀폰은 그때마다 더욱 강력한 안전시스템을 도입하는 계기로 삼았다. 세계 어디를 가도 문턱이 없는 사업장, ‘듀폰 전용 운전면허’ 등 듀폰 특유의 안전문화가 그 산물이다.
환경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기 훨씬 전이었던 1938년 듀폰은 최고경영자 회의에서 환경보호를 결의안으로 채택하고, 세계 최초로 공해 방지 엔지니어를 임명했다. 듀폰이 개발한 냉매인 프레온 가스가 1980년대 지구 온난화 주범임이 드러나, 듀폰에게 ‘환경파괴 기업’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듀폰은 프레온 생산을 중단하고 대체물질 개발에 나섰다. 최고 지속경영책임자(CSO·Chief Sustainability Officer)를 신설해 친환경 경영을 제도화했다.
듀폰 직원들은 윤리적으로 고민되는 상황에선 세 가지 질문을 해본다고 한다. ‘국내법이나 회사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가’, ‘동료나 가족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가’, ‘언론에 보도됐을 때 개인이나 회사가 당황하지 않을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택시 요금 50달러를 허위로 청구한 직원, 회사에서 웹서핑을 하며 부적절한 사이트를 들락거린 간부, 환경 법규를 어기며 공장을 가동한 책임자를 해고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핵심 가치에 위배되는 행동을 한 경우 사안의 경중과 상관없이 곧바로 퇴출시키는 무관용의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다.
안전과 환경, 윤리경영도 그걸 실천할 인재가 없으면 헛된 구호로 끝난다. 듀폰은 19세기 말에 시간 외 수당 제도를 도입하고, 직원 의료보장 제도와 연금제도를 도입, 제도적으로 직원 존중을 실천했다. 인재를 외부에서 스카우트하는 쉬운 길보다 사내 인재에 대해 다양한 근무 경험을 제공하며 계획적으로 육성했다. 그런 인재 중 한 명이 듀폰 역사상 첫 여성 수장인 엘렌 쿨먼 현 CEO다. 그는 올해 사업분할을 요구하며 이사진을 갈아치우려던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녀와 듀폰을 신뢰한 월가의 기관투자자들이 백기사로 나선 덕분이었다.
오늘날 듀폰이 200년이 넘는 글로벌 장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여러 위기 속에서도 기회를 찾는 독자적인 결단력과 더불어 안전과 환경, 윤리경영, 인간존중이라는 ‘기본’을 철저히 준수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바닥이 튼튼해야 높이 쌓는다’는 말이 있듯, 비단 기업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 그리고 모든 개개인에게도 기본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