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름을 미덕이라 여기는 시대, 우리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요? 현대인들은 시(時) 단위에서 분(分) 단위로, 그리고 이제는 심지어 초(初) 단위로 하루를 계획하고 움직입니다.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일분일초의 의미는 과거와 같지 않습니다. 생생했던 뉴스가 5분 만에 식상한 주제로 전락해 버리고, 세계 소식을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까요.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의 일상이 된 ‘초단편 콘텐츠’. 이 콘텐츠들을 이번에 종로구에 위치한 사비나 미술관에서 다채로운 형태로 만나볼 수 있다고 해 찾아가보았습니다. 전시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오늘의 포스팅을 주목해 주세요.
▲ <민간요법> by 최태호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짧은 시 한 편이 보였습니다. 그 이름하여 <민간요법>. 두통이 심할 때, 감기가 왔을 때, 소화가 안 될 때의 대처 방법은 하나라고 하네요. 바로, 퇴근하기.
짧고 경쾌한 어법으로 쉽게 읽히면서도 그 속에서 인사이트가 느껴지죠? 시를 쓴 작가는 이러한 독특한 매력으로 SNS 상에서 폭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SNS 시인’으로 활동하는 최태호 작가의 다른 시도 궁금하시다면 아래의 페이스북에서 한 번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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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IF와 더 도슨트> by 더 도슨트
그 옆쪽에는 초단편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유명한 ‘더 도슨트(the Docent)’가 이번 전시에서 특이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작품을 공개했습니다.
왼쪽에서 볼 때와 오른쪽에서 볼 때 다르게 보이는 입체 사진을 기억하시나요? 어렸을 적 한 번쯤은 가지고 놀아본 경험이 있으실 텐데요. 더 도슨트는 이 입체사진과 최근 유행하는 GIF 형태의 일명 ‘움짤(움직이는 이미지라는 신조어)’의 공통점을 발견해 이번 전시에 차용했습니다. 명동 길거리에 보이는 예수 천국 전도단, 신발 수집가들, 이태원 해방촌에서 밴드를 하는 외국인,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소재만 봐도 다양한 에피소드가 흘러 넘칠 것 같은 주인공들의 GIF 전시가 펼쳐졌습니다. 또한, 이와 관련된 초단편 다큐멘터리를 입체 사진 좌측에 있는 스크린으로 실제로 관람할 수 있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더 도슨트
▲ <1.3초의 영역에 대한 오터리 모듈> by 손경환
2층으로 올라가 보니 오묘한 전시물이 보였습니다. 이 작품을 만든 작가는 실시간(Real Time)의 영역을 표현하기 위해 지구본 위에서 1.3초마다 점점 가까워지는 달의 이미지를 구현했다고 합니다. 왜 ‘1.3초’인가 하면, 빛이 지구에서 달까지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을 뜻한다고 하네요.
정신 없이 돌아가는 작품을 하염없이 보고 있다 보면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며 넋을 놓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만큼 우리가 빠르게 정보를 소비하고 있다는 셈이겠죠?
▲ <사운드 프로젝트> by 김가람
지하 전시장에서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었습니다. 하루에도 수 만개의 이슈들이 업로드되는 인터넷 포탈 사이트. 원고지에 한 글자 한 글자 글씨를 쓰며 문서를 작성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키보드 위에서 춤추는 손가락으로 순식간에 원고가 작성되며 거의 실시간으로 전세계에 전파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아마 아이언맨의 이동 속도보다 검색 속도가 빠를 것 같다는 느낌도 들고요. 댓글을 통해 여론이 생성되는 것도 순식간입니다.
김가람 작가는 이러한 인터넷 상의 즉각적이고 단편적인 댓글에 주목해 음원을 만들었습니다. 음악 가사는 인터넷 댓글 그 자체로 구성하고, 이를 가상의 걸그룹 ‘4ROSE’가 낭독하게 해 인터넷에 음원으로 유포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죠. 일명 ‘사운드 프로젝트’입니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꼬리 자르기 들어가나요’ 등 우리 시대에 관련된 솔직한 댓글이 귀를 파고듭니다. 4ROSE의 모든 음원은 전시기간 동안 작가의 웹사이트에 공개돼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들어보셔도 좋겠습니다.
김가람 작가 웹사이트
▲ <시간기계> by 숭실대 미디어대학원 크로스디자인랩
한편, 숭실대 미디어대학원 크로스디자인랩 연구원들은 ‘시간기계’를 내놓았습니다. 구조물은 회전시간과 속도, 빛을 활용해 ’60초=1분’, ’60분=1시간’이라는 관념을 뛰어넘어 0부터 99까지 확장된 새로운 시간개념을 제안하고자 제작됐습니다. 거대해 보이는 이 장치는 ‘조이트로프(Zoetrope)’라고 하네요.
여기서 잠깐, 조이트로프가 뭔가요?
조이트로프(Zoetrope)는 영화가 발명되기 이전에 사용된, 착시 원리를 활용한 많은 애니메이션 장난감 중 하나입니다. 눈으로 본 이미지를 뇌가 기억해 바로 다음에 이어서 본 이미지와 겹쳐져 보이는 ‘잔상효과’의 원리를 이용하는데요. 1초에 여러 장의 이미지를 연속으로 보여줘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든 것입니다.
영국 수학자 윌리엄 조지 호너(Willam George Honer)가 1834년에 만든 이 조이트로프로는 추후 움직이는 그림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으며, 애니메이션 탄생에도 기여하였습니다.
원 바깥에 설치된 숫자와 가운데 ‘손’의 조형물이 애니메이션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광경을 보다 보니 초현실 세계에 온 것 같은 진기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이 밖에도 <60 sec ART>전에서는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 ‘SNS 3분 국제영화제’, ‘10초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수상작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전시장 한 켠에 스크린과 편안한 의자가 준비돼있으니 마음껏 영화 관람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부족해 미처 보지 못한 작품은 <60 sec ART> 블로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60sec ART 블로그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는 말이 있지만 이제 시대의 흐름은 ‘1초 전 다르고 1초 후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앞으로의 문화 콘텐츠들은 어떻게 또 어떻게 변화해갈지 궁금하네요. 😀
<60 sec ART>
기간: 2016.5.21~2016.7.10
공식 홈페이지: www.savinamuseum.com
이용요금: 성인 5,000원 / 어린이, 청소년 3,000원
위치: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159 사비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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