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인하대학교 김춘우 교수(LG디스플레이 자문교수)
디스플레이 화질은 성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평판 디스플레이가 처음 상용화되었을 때 기존 CRT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화질 보다는 CRT의 직육면체 대비 평판이라는 외관(form factor)의 차이였습니다. 하지만, 업계의 노력으로 평판 디스플레이 도입 초기 대비 디스플레이 화질은 비약적으로 개선되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최근 들어 ‘제조사별 화질 차이가 감소했다.’, ‘고가형과 저가형 모델의 화질 차이가 줄어들었다.’, 또는 심지어 ‘화질이 더는 화제가 되지 않는 수준이 되었다.’ 등의 이야기가 전해지곤 했습니다. 이와 같은 디스플레이의 화질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디스플레이 화질은 편의상 세 가지 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인지 화질’입니다. 인지 화질이란 소비자가 자신의 경험에 기반을 두어 판단하는 주관적 화질을 의미합니다. 소비자에게 두 가지 디스플레이를 보여주고 마음에 드는 화질의 디스플레이를 선택하기를 요구하는 실험을 가정해 봅시다. 두 가지의 디스플레이는 OLED와 LCD와 같이 다른 방식 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같은 방식이지만 서로 다른 제조사의 디스플레이들 일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이건 디스플레이 기술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 소비자일지라도 자신이 선호하는 화질의 디스플레이를 선택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은 선택의 근거를 인지 화질이라 부릅니다.
디스플레이 화질의 두 번째 단계는 ‘지각속성 화질’ 또는 ‘화질관련 지각속성’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주어진 두 가지 디스플레이 중에 자신이 선호하는 디스플레이를 제시한 소비자에게 ‘당신은 A와 B의 두 가지 디스플레이 중에서 A를 선호한다고 답변했는데 A를 선호하는 이유를 설명해 달라’는 추가 질문을 주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소비자 또는 실험자는 디스플레이 A를 선택한 이유를 자신의 경험 또는 느낌을 토대로 설명할 것이고 그 이유는 실험자가 화질 또는 디스플레이 전문가가 아니므로 매우 다양할 것입니다. ‘화면에 있는 여배우의 얼굴색 때문이다’라고 할 수도 있고 ‘A와 B 디스플레이의 밝기 차이 때문이다’라고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소비자 또는 실험자들이 제시한 주관적 이유를 화질 전문가가 기술적 유사성에 근거하여 분류하고 정리한 것을 ‘지각 속성’이라 합니다. 대표적인 ‘지각 속성’들로는 선명도(sharpness), 대조도(contrast), 밝기(brightness), 색채도(colorfulness 또는 vividness), 자연색 재현도(naturalness)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이해를 위해 부연 설명하자면 대조도를 의미하는 contrast는 contrast ratio라기보다는 perceived contrast를 의미합니다. 일반인이 색재현 선호도를 판단 또는 평가하는데 민감하게 반응하는 색상을 흔히 기억색이라 부르며 대표적인 기억색은 피부색, 녹색과 청색입니다. ‘자연색 재현도’는 이와 같은 기억색이 얼마나 잘 재현되었는지의 정도를 의미하죠.
지금까지 이야기한 ‘인지 화질’과 ‘지각속성 화질’은 어떤 관계인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인지 화질’은 소비자가 구매 결정을 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주관적 화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인지 화질’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하여 인지 화질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소들을 도출한 것을 ‘지각속성 화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학적으로 볼 경우 ‘인지 화질’은 ‘지각속성 화질’ 요소들을 변수로 하는 함수의 함수값이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 가지 ‘지각 속성”들의 ‘인지 화질’에 대한 기여도 분석도 가능하게 됩니다.
디스플레이 화질의 세 번째 단계는 ‘기술속성 화질’입니다. 디스플레이에 대한 기사나 논문 등에 나오는 대부분의 기술적 특성들을 ‘기술속성 화질’ 또는 좀 더 정확하게 ‘화질관련 기술속성’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color gamut (또는, color volume), luminance, CCT, contrast ratio, PPI, MPRT, uniformity, bit depth, cross talk, viewing angle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인지 화질’이나 ‘지각속성 화질’이 주관적인 인간 시각의 평가에 근거하는 데 반하여 ‘기술 속성’들은 대부분 광학/물리학적 측정 방법에 의해 객관적 수치로서 제시됩니다. 디스플레이 화질과 관련된 ‘기술 속성’들은 IEC TC110 (www.iec.ch) 에서 공적 국제표준, 또는 ICDM(International Committee for Display Metrology, www.icdm-sid.org)등에서 IDMS(International Display Measurements Standard)와 같은 사실상 표준에 의해 측정 및 계산됩니다.
‘지각속성 화질’과 ‘기술속성 화질’의 차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각속성 화질’은 주관적 판단에 기반을 두지만 ‘기술속성 화질’은 대부분 객관적 측정 결과에 근거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지각속성 화질’은 ‘인지 화질’과 상대적으로 밀접한 연관이 있는 반면에 ‘기술속성 화질’이 ‘인지 화질’에 미치는 영향은 덜 직관적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술속성 화질’은 디스플레이 개발자가 자신이 활용하는 재료, 방식, 회로 또는 알고리즘 등에 의한 성과를 또는 연구 개발의 결과를 평가할 수 있는 일차적 근거로서 많이 활용됩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기술의 진보성을 나타내는 지표로서 많이 활용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기술 속성’이 기존 대비 5% 개선되었다고 가정할 경우, 그에 따른 ‘인지 화질’의 개선은 인지되지 못할 정도로 미미할 수도 있고 이와는 반대로 상당한 ‘인지 화질’ 개선 효과를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인지 화질’에 민감한 소비자에게는 주어진 ‘기술 속성’의 개선 도보다는 그와 같은 개선이 ‘인지 화질’에 미치는 영향 또는 기여도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관적 평가에 기반을 둔 ‘지각속성 화질’과 ‘인지 화질’을 컴퓨터에 의해 정량적으로 계산하는 방법 등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연구를 통해 개선된 ‘기술 속성’의 ‘인지 화질’ 기여도 측정이 가능하게 되리라 예상됩니다. 더불어, 패스트 팔로우어(fast follower)의 경우 경쟁기업 또는 경쟁방식의 디스플레이 화질과의 비교 평가가 중요하지만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디스플레이를 개발할 때에는 ‘화질 예측’ 모델을 이용하여 새로운 디스플레이가 갖추어야 할 차별화된 화질 목표를 설정하는 데 활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외필진의 글은 LG디스플레이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