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는 기업의 비결, 이번 시간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제약 화학 기업 ‘머크(Merck)’의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글 성현희 기자 | 전자신문
과연 영원한 것은 없을까. 인간의 평균 수명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반면 기업의 수명은 날로 줄어들고 있다. 세계 500대 기업의 평균수명은 40~50세. 우리나라 코스피 상장기업(2011년 기준) 686개의 평균수명은 33세. 국내 대기업 평균 수명은 27세. 30년을 버티기가 얼마나 힘든지 짐작할 수 있다. ‘무한 초경쟁 시대’로 접어들면서 100년 장수 기업은 더욱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가 됐다. ‘생존’이 다시금 화두가 된 요즘, 독일 머크는 올해 창립 348주년을 맞이했다. 반세기를 무려 7번을 보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화학 기업 머크의 ‘불로장생’ 비결은 무엇일까.
소유와 경영의 완벽한 분리
작년 8월에 방한했던 바터 갈리나 머크 기능성 소재사업 총괄사장은 머크의 장수 비결로 ‘완벽한 지배 구조’를 꼽았다. 그는 머크에 39년간 일해온 사람으로서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부분이 어느 기업도 흉내 내기 힘든 지배 구조라 강조했다. 갈리나 사장은 “머크는 경영 능력을 핏줄보다 중요시 여기는 회사”라며 “소유는 머크 가문이 하고 있지만 경영은 전문가에게 맡겨 회사가 오래 존속될 수 있는 길을 찾는다”라고 말했다.
독일 머크는 1668년 창업자 프리드리히 야코프 머크가 독일 중남부 헤센 주의 소도시에 있던 약국 하나를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의약품 생산을 시작으로 해서 코팅제, 액정 등 기능성 화학소재를 양산하면서 지금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2014년에는 전 세계 66개국에서 매출 115억 유로(약 15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머크의 지배 구조는 단순한 듯하면서도 복잡한 구조를 가졌다. 머크 지주회사인 이머크에는 가족 위원회와 파트너 위원회가 있다. 가족 위원회는 머크 가문 사람들이, 파트너 위원회에는 머크가 사람들과 비머크 사람들로 구성돼 머크 최고 경영진을 선출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기업에 대한 가문의 통제력은 유지하면서도 회사의 경영은 엄격하게 분리했다. 전문 경영인에 경영을 맡기면서도 관리 감독은 머크 가족이 하는 구조다. 현재 머크의 C레벨 급 경영진 가운데 머크 가문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이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의사결정의 자율성 기준은 ‘1억 유로(약 1344억)’다. 1억 유로가 넘지 않는 수준에서는 전문 경영인이 자율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하지만 1억 유로가 넘는 투자건에 대해선 파트너 위원회의 승인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5억 유로가 넘으면 가족 위원회 승인까지 받아야 하는 구조다.
한 가지 더 독특한 점은 머크의 최고 경영진이 되면 재임기간 동안 머크가로 일시적으로 입양된다는 것이다. 외부에서 영입된 사람일지라도 오너와 같은 입장에서 기업의 중대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여기에는 무한 책임도 따르지만 보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회사의 방향을 결정짓도록 만든 강력한 시스템이기도 하다.
‘기술’ 중시 기업 문화
머크는 디스플레이 산업 분야에 많은 기술 혁신을 이끈 소재 업체다. 현재 액정표시장치(LCD)의 핵심 소재인 액정(Liquid Crystal)을 공급하는 ‘넘버 원’ 회사다. 이제는 액정 산업에서의 선두 자리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분야에서도 지속해 나가길 원하고 있다. 머크의 이러한 OLED 소재 시장 선점 노력은 이미 20년 전부터 시작됐다.
머크는 신기술 투자와 관련해서 잠재 성장 가능성만으로도 투자를 아끼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OLED 역시 20년 전에는 투자 가치가 사실상 미약했다. 당장 얻을 수 있는 이익도 불투명했다. 하지만 머크는 충분히 투자 타당성이 있다고 보고 개발에 나섰다. 퀀텀 소재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큐라이트 나노텍의 지분도 100% 인수했다. 이미 10년 전부터 이 회사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향후 최첨단 전자산업 분야에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하엘 그룬트 한국 머크 사장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유연성 있는 투자가 머크 기업의 성공 비결”이라며 “기술과 잠재 가치를 중시하며 끊임없이 변신을 추구했던 것이 350년 가까이 버티게 한 뒷심”이라고 설명했다.
생존이 어려워지는 불확실한 경영 환경 속에서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지속적인 변신이 필요하다. 머크는 이러한 변신에 ‘다음 세대’를 위한 고민이 1순위였다. 분기별 실적에 연연해하지 않고 세대를 뛰어넘어 다음의 먹거리를 준비해 왔던 것이다.
물론 이 가운데 실패 사례도 있다. 하지만 실패보다는 성공 사례를 더 많이 만든다면 실패는 충분히 용인될 수 있다는 게 기업 경영의 숨은 철학이다. 갈리나 사장은 “실수를 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며 “가끔 오판을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잦지 않도록 노력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 머크는 또 한 번 혁신
머크는 오는 2018년 창립 350주년을 맞이한다. 이 시점을 기점으로 또 한 번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독일 담슈타트에 있는 그룹 본사를 중심으로 중앙 집권화 체제로 전환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동안 분권화된 시스템으로 운영해 오면서 비효율적인 면도 많았기 때문이다. 국가별로 분권화된 체제에서 본사를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화된 의사결정 체제를 구축해 일관되고 균형 잡힌 사업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앞으로의 장기 전략인 셈이다. 새로운 조직 구조와 함께 다양한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미래의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선택과 집중’ 아이템도 새롭게 선정한다. 2018년은 머크의 향후 100년을 설계하는 또 다른 전환점이 될 것이다.
가족 소유 기업으로서 오랜 역사와 지속적인 성장을 이끌어 온 머크의 영속 비결은 눈 앞의 이익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발전을 최우선시하는 기업문화에 있었군요. 앞으로 머크와 함께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OLED 기술 혁신을 이끌 LG디스플레이의 미래도 기대해주시길 바랍니다! 😀